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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날

[소중한 잡담/책] 소통의 거리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by 에뽈티 2024. 7. 6.

예전 유치원 교사시절, 마당에서 발견한 죽은 아기새를 들고 와 허둥지둥 놀라서 내 손위에 올려놓은 아이들이 혹.... '죽음'에 대하여 선입견을 가질까 싶어 .... 조심조심 햇살좋은 곳에 아이들과 함께 죽은 아기새를 묻어주고 마음을 다해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 역시 .... 죽음은 어둡고 무섭고 무겁고....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이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전 이화여대 교수님이셨고 초대 문화부장관이셨던 이어령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제자 김지수님과의 인터뷰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이미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인생 선배이시고 스승이신 이어령님의 말씀을 놓칠라 .... 포스트잍으로 연신 표를 해 가며 읽은 흔적을 더욱 제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되도록 가능하면 '적용'하고 '변화'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로서는 
값진 가르침들 중 
제 마음속에 너무 많은 가르침으로 정리에 대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게 허락된 깨달음을 조금 나누려고 합니다. 
 
유독 .... 마음에 담게 되었던 본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적이 아니라 경협(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군요.”
그렇지. 에너미(enemy)는 안 돼. 라이벌(rival)이어야지. 라이벌의 어원이 리버river. 강물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서로 사이가 나빠. 그런데도 같은 물을 먹잖아. 그 물이 마르고 독이 있으면 동네 사람이 다 죽으니. 미워도 협력을 해. 에너미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하지. 같이 있는 거야. 그게 디지로그 정신이야. 기업도 마찬가지라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는 에너미가 아니라 라이벌이야. 큰 조직은 작은 조직의 모험 정신을, 작은 조직은 큰 조직의 시스템을 배우며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해야 해.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아나? 인터페이스야. 위치로 보면 목!”
목이요? 머리와 가슴을 이어주는 목?”
그렇지! ! 분리하면서도 이어주는 목! 머리와 가슴을 잇는 목. 손과 발을 잇는 손목. 발과 다리를 잇는 발목, 모든 국가, 모든 기업, 모든 개인은 이 이 가장 중요해. 사람 꼼짝 못하게 할 때 어떻게 하나? 목에 칼 씌우고, 손목에 수갑 채우고, 발목에 쇠고랑 채우지. 인터체인지를 묶는 거야. 우리 어릴 때 놀 때 어른들이 사이좋게 놀아라그러잖아. 이 사이가 이야.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목이 막히지 않고, 사이가 편안한 상태야. 반면 코로나는 문명과 자연의 사이가 나빠서 왔지. 이 나쁜 사이, 뭉친 목을 풀어줘야 세계가 잘 굴러간다는 얘길세.”
이쪽과 저쪽의 사이를 좋게하는 사람이 필요하겠군요?”
그런 사람이 바로 21세기의 리더고 인재라네. ......... p.274~275

 
적이 아니라 경쟁자가 필요한 세상. 
경쟁자의 영어명인 라이벌(rival)의 어원이 리버(river)라는 것. 
강물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같은 물을 먹으니까 미워도 협력을 하는 관계. 

 
이런 생각을 하며 
어느 카페에서 보게 된 거리....... 
 

 
마치 강처럼 차도를 사이에 두고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아무 관계 없이 지내다가 신호등의 신호음에 따라 횡단보도를 통해 교류를 하는 듯 서로 소통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떠오르게 되었던 본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갈수록 inter가 중요하죠.”
중요해. 앞으로 점점 더 interface 접속장치가 중요해. (컵을 가리키며) 이 컵을 보게.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 달라. 서로 타자야.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 손 내미는 거지.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서로의 것이죠.“
컵에 달렸으니 컵의 것이겠지만, 또 컵의 것만은 아니잖아. ‘나 잡아주세요.’라는 신호거든. ‘손잡이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 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그게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그런데 또 한편 컴에 손잡이가 아니라 자기 이름이 쓰여 있다고 생각해봐. 갑작스럽게 내 것이 되잖아. 같은 사물인데도 달라지는 거야. 유일해지는 거지. 이런 생활 속의 생각이 시가 되고 에세이가 되고 소설이 되고 철학이 되는 거라네.“...p.126

 
서로 타자로서 존재했던 컵. 
그 컵에 손잡이가 달리면서 생겨난 관계. 
그 컵의 소유조차도 혼동이 될 수 밖에 없는 차이로 인한 역할의 생성. 
손잡이가 달린 인간으로 사느냐? 손잡이 없는 인간으로 사느냐? 
 
서로 다르게 살았던 강을 사이에 둔 윗동네와 아랫동네. 
그런데 .... 컵의 손잡이가 필요을 낳듯, 필요가 컵의 손잡이를 만들게 했듯, 
강 사이에 다리를 놓아 교류를 통해 서로의 필요를 나누기로 한 사람들. 
 
마치 .... 너무 큰 그림을 작게 축소해 버린 듯 하지만 
(이어령님께 송구함이 없지 않으나 ..... 제 삶에 적용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에 가상의 점수를 주시기를 바라며)
이것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전 잠깐 숨을 죽였습니다. 
 
또 이어령님은 이런 본문에서 소통, 대화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게. 위대한 철학이 왜 대화에서 나왔겠나. 대화는 변증법으로 함께 생각을 낳는 거야. 부부가 함께 어린아이를 낳듯이. 혼자서는 못 낳아. 자식을 함께 낳는 것. 그게 대화하네. 내가 혼자 써도 그 과정은 모두 대화야. 내 안에 주체와 객체를 만들어서 끝없이 묻고 대답하는 거지. 자문자답이야. 그래서 모든 생각의 과정은 다이얼로그일세. ... p.155

 
많은 세상의 놀라운 이치와 현상 그리고 해석을 풀어놓으신 이어령님은 결코 그것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윗동네 아랫동네가 신호등 소리에 따라 횡단보도를 오가 듯, 컵에 물을 따라 먹기에 불편하여 손잡이를 만들어 컵을 들고 물을 마시듯, 이어령님이 살아오시면서 함께 나누었던 많은 주변의 은인들과의 만남속 축복의 소통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결코 혼자서 잘 서야하는 듯 책임을 갖고 있지만, 결코 혼자 서가는 길에 혼자 있지 않음을 명심할 것에 대해 당부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지만 절대로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음을, 그래서 손을 먼저 내밀어 손잡이를 만들던지, 손을 내밀어 만들어진 손잡이를 잡아채던지 ..... 자신이 가진 관계에 있어서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재차 강조하고 계십니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 금과 같은, 은과 같은 말씀으로 가득차 있는 이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을 읽으며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 저는 비록 저자 김지수님께서 이어령님과의 인터뷰내용을 간접적으로 접하기는 했지만 .... 저는 거의 만들어져 있는 손잡이를 잡으려고 애써보렵니다. 감히 그 진리가 너무 숭고하고 높고 놀라워서 그 진리의 컵에 달린 손잡이를 건실하게 잡을 수 있도록 ....
이 책 덕분에 더욱 깨닫게 된 존귀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의 중요성이므로, 
보다 소중한 마음과 태도로 저의 주변 사람들과의 횡단보도를 잘 설계하여 건너야 할 신호등의 신호음에서 잘 건너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예전 읽었던 동화《마지막 잎새》 에서 마지막 잎새가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을 견뎌내 담벼락에 붙어있었던 것과 같은 잎새그림에 또다른 희망을 갖게 되었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이어령님의 숭고한 죽음앞에 괜시리 더욱 심장이 뛰노는 것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이유를 이 책에 담아주셨음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바로, 그 날! 
<소통의 거리-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에서 였습니다.